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비트 힐베르트 (문단 편집) === 말년 === 힐베르트는 1930년 봄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였고, 같은 해 가을 쾨니히스베르크 명예 시민증을 수여받았다. '''1931년에 [[쿠르트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하여, 힐베르트가 꿈꾸었던, 모순 없이 명제의 옳고 그름을 완벽히 판별해낼 수 있는 공리계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힐베르트는 불완전성 정리를 피하기 위하여, 조건을 약화시켜 증명론을 발전시키려는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80세 때 길에서 넘어져 다친 후 병발증이 발생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2월 14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ilbertGrab.jpg|width=350]] (독일 [[괴팅겐]]에 있는 힐베르트의 묘비) 힐베르트의 묘비에 적혀있는 말은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로, 이는 그가 1930년 정년퇴임 기념으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했던 고별 연설의 마무리 부분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내용을 말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독일어권 지식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던 이그노라비무스 논쟁[* Ignorabimus: 그것이 사실 인지 아닌지 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의미를 라틴어 경구가 '''"Ignoramus et ignorabimus (우리는 모르고, 모를 것이다.)"'''인데, 여기서 Ignorabimus 단어를 꺼내온 것이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그노라비무스 논쟁은 1872년 독일의 생리학자였던 에밀 뒤 보아레이몬드(Emil du Bois-Reymond)가 『자연지식의 한계에 대하여』라는 강연에서 "과학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인류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결국 영원히 해결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생겨난 논쟁이었다. 힐베르트는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는 태도가 지식인이 가질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에 그와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비꼬고자 자신의 고별 연설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Wir dürfen nicht denen glauben, die heute mit philosophischer Miene und überlegenem Tone den Kulturuntergang prophezeien und sich in dem Ignorabimus gefallen. Für uns gibt es kein Ignorabimus, und meiner Meinung nach auch für die Naturwissenschaft überhaupt nicht. Statt des törichten Ignorabimus heiße im Gegenteil unsere Losung: '''Wir müssen wissen, Wir werden wissen.''' >철학자 같은 태도나 깨달은 듯한 논조로 문명의 몰락에 대해 예언하거나, "우리는 모를 것이다" 라는 사상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 수학자들은 그들의 말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 수학자들에게 "우리는 모를 것이다" 라는 논법은 통하지 않으며, 자연과학에도 역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어리석은 "우리는 모를 것이다" 사상에 대항해, 우리들의 구호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